엘리베이터 거울과 모바일게임 리소스 패치
기다림의 지루함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은 꽤 지루합니다. 굳이 거창하게 심리학 이론을 꺼내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죠. 문제는 실생활의 서비스부터 모바일 게임과 앱의 서비스에서도 어쩔 수 없이 고객을 기다리게 만드는 상황이 생긴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행히도 기다림에 관한 기존 심리학 연구들을 살펴보면 기다림을 조금 덜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키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명확성: 사람들은 기다림의 명확한 목표나 예상 시간을 알면 덜 지루해합니다. 은행에서 나누어주는 대기열 표, 배달 앱에서 보여주는 배달까지 남은 시간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죠. 김고은[1]의 연구 역시 좋은 사례입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 중 한 그룹에게는 ‘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양해를 구했고, 다른 그룹에게는 양해를 구하지 않고 기다리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해를 구한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더 참을성 있게 오래 기다려주었죠.
2. 주의 환기: 크리스토퍼 씨(Christopher Hsee)의 연구에 따르면, 기다리는 시간에 게을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무언가를 제공하면 덜 지루해합니다 [2]. 엘리베이터에 걸려있는 거울, 병원 입원실마다 비치된 TV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죠. 수하물을 찾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고객들의 클레임을 처리해낸 휴스턴 공항 이야기도 꽤 유명합니다. 휴스턴 공항 측은 클레임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수하물을 찾는데 걸리는 전체 시간을 줄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입국 게이트를 수하물 터미널로부터 멀찍이 떨어뜨려서 단순히 승객들을 12분간 서서 기다리게 하는 대신에 12분간 걷게 만들었을 뿐인데 클레임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3].
3. 빠른 완료: 예상보다 기다림이 빨리 끝나면 결과적으로 지루했던 경험이 희석됩니다. MIT의 연구원 리처드 라슨(Richard Larson)이 이야기하기를, 디즈니 랜드에서는 놀이기구를 탑승하려는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예상 대기시간을 실제 예상 대기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여준다고 합니다 [4]. 1시간이 걸린다고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30분 만에 입장하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쁜지는 누구든 대기줄에 서봤다면 공감할 수 있죠.
모바일 게임의 기다림
모바일 게임에서도 유저가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바로 리소스 패치 시간입니다. 게임 개발사에서는 네트워크 환경이 열악한 글로벌 유저의 참여(Engagement)를 고려해서라도 빌드 용량 최적화에 신경을 씁니다. 이 때문에 설치 이후 리소스 패치를 통해 추가 데이터를 다운로드하게 만드는 방식을 주로 활용하게 되죠.
하이퍼 캐주얼이나 캐주얼 장르처럼 애초에 빌드 용량이 가벼운 게임이 아닌 이상에는 리소스 패치를 불가피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앱 스토어나 구글 플레이에 빌드를 제출하지 않고 가벼운 업데이트를 해야 할 때도 대부분 리소스 패치 방식을 적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유저는 수십MB에서 수천 MB의 추가 데이터를 다운로드하면서 짧게는 1분 이내,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길게는 5~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다리는 경우가 왕왕 생깁니다. 최악의 경우 유저는 이 기다림의 시간을 참지 못하고 게임 설치를 포기하거나, 다음 기회에 게임을 즐기겠노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개발사는 리텐션 데이터를 보면서 유저들이 생각보다 꽤 ‘다음 기회’를 귀찮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죠.
기다림을 더 즐겁게
Apple은 앱스토어 심사 지침의 4.2.3 항목을 통해 ‘앱을 사용할 때 추가적인 리소스를 다운로드해야 한다면, 진행하기 전에 다운로드할 리소스 크기를 알리고 사용자에게 승인을 요청해야 한다’라고 강제하고 있습니다 [5]. 다행히 이러한 정책 덕분에 대부분의 게임들이 명확성에 대한 항목을 어느 정도 잘 지키고 있죠. 여기서 더 나아가 NC soft의 리니지 2M은 리소스 패치의 남은 시간 같은 정보를 유저에게 제공하기도 합니다.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 오븐 브레이크는 지금 하고 있는 리소스 패치를 통해 어떤 콘텐츠나 신규 캐릭터를 즐길 수 있는지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영상을 통해 티징 하기도 하죠. 이러한 방법을 통해 유저는 기다림의 목표나 진행도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심지어 기대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환기까지 신경 쓰는 게임도 있습니다. 펄어비스의 검은 사막 모바일이나 넷마블의 세븐 나이츠, 모두의 마블 같은 게임은 유저가 기다리는 동안 즐길 수 있는 미니 게임을 제공하여 유저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유저는 지루하게 프로그레스 바가 채워지길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니 게임 플레이를 통해 짧게나마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관련하여 애플은 게임 최초 설치 이후에 별도의 리소스 패치가 필요할 때, 패치 다운로드는 게임 실행 시 백그라운드에서 진행이 되고 유저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게임 콘텐츠에 접근하는 방향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6]. Blizzard의 하스 스톤은 이 권장 사항을 잘 지키고 있는 사례죠.
마지막으로, 클라이언트 프로그래머가 패치할 리소스 파일의 다운로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유저가 생각보다 더 빨리 리소스 패치가 완료되었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이 작업의 목적은 한 번에 통신할 수 있는 개수가 제한되어 있는 모바일 기기의 환경을 고려하여 더 효율적으로 리소스 파일을 구성하는 데에 있지만 [7], 결과적으로 유저는 처음에는 무거운 파일을 받으면서 프로그레스가 천천히 차는 경험을 하다가 마지막에 가벼운 리소스 파일을 다운로드받으며 점차 속도가 빨라진다고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예상보다 빨리 기다림이 끝났을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죠.
시사점
유저의 기다림을 덜 지루하게, 혹은 더 즐겁게 만드는 것은 개발자 입장에서는 번거롭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입니다. 기다림에 대한 기존 심리학 연구들은 모바일 게임 유저들이 리소스 패치와 같은 상황에서 덜 지루하게, 혹은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솔루션을 전하고 있습니다.
1. 리소스 패치 용량이나 진행도 같은 정보뿐만 아니라 남은 시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유저가 리소스 패치 완료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콘텐츠를 티징 해주세요.
2. 미니 게임, 영상과 같은 다양한 즐길 거리, 볼거리를 제공하여 유저가 덜 지루하게, 혹은 더 즐겁게 기다릴 수 있게 하세요.
3. 리소스 파일의 다운로드 우선순위를 조절하여 유저가 시간이 지날수록 다운로드 속도가 더 빠르게 느끼도록 만드세요.
[1] 이고은 & 신현정. (2012). 주의분산, 기다림의 이유, 시간 단서가 기다림 시간 추정에 미치는 영향. 인지과학, 23(1), 73-95.
[2] CK Hsee, AX Yang, L Wang. (2010). Idleness aversion and the need for justifiable busyness. Psychological Science, 21(7), pp. 926-930
[5] https://developer.apple.com/kr/app-store/review/guidelines/
[6] 이 정책 때문에, 출시 버전을 이른바 ‘통 빌드’ 형태로 심사에 제출하는 개발사도 있습니다.
[7] 리소스 패치 시에 유저는 네트워크를 통해 한번에 여러 개의 파일을 동시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동시에 무한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1~10개 정도의 파일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3개의 파일을 동시에 받는다고 가정할 때 하나하나의 파일이 3개의 다운로드 리스트에 담는데 하나가 끝날 때 나머지 파일을 담게 됩니다. 이때 마지막에 용량 큰 파일이 남아 버리면 3개 파일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데 한 파일만 다운로드하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운로드 속도가 느려질 수 있습니다.
*원문 출처 : https://brunch.co.kr/@jaehyunkim